상실의 시대를 지나는 법 … <드라이브 마이 카>

평소 외국어에 관심이 있는 편이라 낯선 언어를 배우고 싶다는 호기심이 있어서 매우 기초적인 일이지만 중국어, 일본어를 조금씩 배우는 중인데 극중 연극에서 이 언어가 나오면 외계어(!) 같은 낯선 느낌은 들지 않고 더 친근한 말로 들려서 좋았다. 영화에는 클래식 음악이 나오는데 모차르트의 ‘Rondo K.485 in D Major’와 베토벤의 ‘String Quartet No.3 in D Major’다. 극중 주인공처럼 비중 있는 사브 900 터보가 아주 멋지게 나온다. 연식을 살펴보면 꽤 오래된 클래식카 같은데 요즘 나와도 잘 팔릴 것 같은 디자인이다. 처음 베스파를 봤을 때 반한 느낌이랄까. 주인공 카복의 한자 이름은 가복(家福(家福) 극중 상황에 비춰보면 뭔가 아이러니한 이름이다.

평소 외국어에 관심이 있는 편이라 낯선 언어를 배우고 싶다는 호기심이 있어서 매우 기초적인 일이지만 중국어, 일본어를 조금씩 배우는 중인데 극중 연극에서 이 언어가 나오면 외계어(!) 같은 낯선 느낌은 들지 않고 더 친근한 말로 들려서 좋았다. 영화에는 클래식 음악이 나오는데 모차르트의 ‘Rondo K.485 in D Major’와 베토벤의 ‘String Quartet No.3 in D Major’다. 극중 주인공처럼 비중 있는 사브 900 터보가 아주 멋지게 나온다. 연식을 살펴보면 꽤 오래된 클래식카 같은데 요즘 나와도 잘 팔릴 것 같은 디자인이다. 처음 베스파를 봤을 때 반한 느낌이랄까. 주인공 카복의 한자 이름은 가복(家福(家福) 극중 상황에 비춰보면 뭔가 아이러니한 이름이다.

상실의 시대가 지나가는 법… <드라이브 마이카> 하마구치 류스케의 <드라이브 마이카>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동명의 단편을 원작으로 해 만든 영화라고 한다.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 때처럼 ‘드라이브 마이카’도 주변 사람들이 추천해줘서 영화관에서 봐야 했는데 근처에 상영할 곳이 없어 결국 이제서야 보게 됐다.(국내 개봉 1주년을 맞아 얼마 전 재개봉을 했는데 역시 이번에도 근처에 상영할 곳이 없었다. 덕분에 이 영화가 생각나서 볼 수 있었던 게 다행인데요.평소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해서 그의 장편과 단편소설 그리고 에세이까지 많이 읽은 편이지만 <드라이브 마이카>가 수록된 단편집 <여자 없는 남자들>은 읽어본 적이 없다. 원작을 영화화했다고 해서 단편소설을 먼저 읽고 영화를 볼까 했는데 영화 러닝타임이 3시간 가까이 되는 걸 보고 영화는 대략 원작의 뼈대 정도만 가져와 감독이 재구성했을 것 같아 이번에는 영화를 먼저 보고 원작을 읽기로 했다.(지금 내 책상 위에 여자 없는 남자들이 있다) 영화의 주인공인 가복은 연극배우이자 연출가이고 아내인 오토는 TV 드라마 작가다. 부러울 게 없어 보이는 부부.그러나 어느 날 허베이는 아내의 외도를 목격하지만 이에 대해 모른 척 지나쳐 버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는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는다.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는 부부가 어느 날 아무런 이유 없이 아내의 가출 혹은 외도로 남자는 홀로 남겨지고 그 남자는 무언가를 찾기 위해 길로 나선다는 점에서 하베이는 ‘전형적인’ 하루키 세계의 남자다. 오토는 쓰러지기 전 뭔가 결심하고 저녁에 할 얘기가 있다고 출근하는 까옥에게 말하지만 까옥은 그녀가 털어놓을까봐 일부러 아무것도 하지 않고 돌아다녔다. 늦게 집에 돌아와 쓰러져 있는 오토를 발견하지만 그녀는 이미 사망한 뒤였다. 아내의 외도를 알고 있었지만 여전히 그녀를 사랑했던 가와키타는 큰 상실감에 빠져 히로시마 연극제에 참가하기 위해 떠난다. 여기서 자신의 차를 운전해 주는 운전자 마사키를 만난 가호쿠(河北. 말수가 적은 마사키는 묵묵히 하북의 차를 몰지만 마사키에게도 어머니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가호쿠는 아내의 죽음에 대해, 미사키는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각각 상처를 안고 있는 것이다.하지만 아무리 이해한다고 생각하는 상대도, 아무리 사랑하는 상대도 다른 사람의 마음을 그대로 보는 것은 무리입니다. 자신이 힘들어질 뿐이에요. 그래도 그것이 자신의 마음이라면 노력에 따라 확실히 엿볼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자신의 마음과 능숙하게 솔직하게 타협해 나가는 것이 아닐까요. 정말 다른 사람을 만나고 싶다면 나 자신을 깊이 지켜볼 수밖에 없어요.마사키는 어머니의 죽음과 얽힌 사연을 가와이에게 들려주면서 정말 다른 사람을 만나고 싶다면 먼저 자신을 깊이 지켜봐야 한다고 말하고, 가와이는 진실을 마주할까 두려워 자신의 내면을 무시했음을 깨닫는다. 카와키타(河北)는 미사코(美佐子)에게 말한다.살아남은 자는 죽은 자를 계속 기억한다. 어떤 형태로든 그것이 이어진다. 나와 당신은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어. 살아야지. 괜찮아 우린 분명 괜찮을거야.그리하여 가와키타와 미사키는 그동안 어깨에 무겁게 짊어지고 있던 상실의 아픔을 치유한다. 〈드라이브 마이카〉는 극중 안톤 체호프의 〈바냐 아저씨〉를 만드는 과정이 중요한 요소로 등장한다. 여기서 한 가지 독특한 설정이 나오는데 바로 연극의 등장인물을 여러 나라 배우들로 골라 배우들은 자기 나라 말로 대사를 한다. 심지어 청각장애인 배우가 대사를 수화로 말한다. 그래서 한 연극에서 일본어, 중국어, 한국어, 수화가 등장하는 것이다. 배우들은 나와는 다른 언어의 상대방 대사를 듣고 그것에 리액션을 해야 한다. 같은 나라 말을 써도 배우 간 궁합이 생길까 말까 한 연극으로 유명 관광지처럼 여러 나라 말이 섞이다니. 감독의 의도는 뭘까. 본인의 배역에 자신이 없었던 다카쓰키가 가와키타에게 고민을 털어놓자 가와키타는 자신을 바쳐 대본에 답하겠다. 대본이 너에게 묻고 있어. 그 말을 듣고 대답하면 당신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조언한다. 상대방이 어느 나라 말을 하느냐가 중요하지 않다. 대본이 무엇을 묻고 있는지 귀를 기울이라는 게 감독이 말하려는 게 아닌가. 이는 위에서 언급한 진실로 남을 만나고 싶으면 자기 자신을 깊이 똑바로 보라는 미사코의 말과도 이어진다. 다카쓰키는 평소 드라이브 중 아내가 녹음해 준 연극 대사에 맞춰 바냐 삼촌 역을 열심히 연습하던 가와베이에게 왜 바냐 삼촌 역을 연기하지 않느냐고 묻자 가와베이는 체홉은 무섭다. 그의 대사를 들으면 나 자신이 끌려나온다며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는 것을 두려워하지만 미사코와의 홋카이도 여행을 통해 아픔을 달래고 바냐 아저씨씩 역을 맡는다. 바야흐로 자신과 당당히 마주할 수 있게 된 것이다.극은 영화는 소냐의 감동적인 수화로 끝이 난다.바냐 아저씨 사는 거예요. 길고 긴 낮과 긴 밤을 살아갑니다. 운명이 우리에게 주는 시련을 참아요. 지금도, 늙은 후에도 쉬지 말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일하세요. 그리고 우리 때가 와서 조용히 죽고 무덤에 가면 얘기해요. 얼마나 힘들었는지, 얼마나 울었는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하나님이 불쌍히 여길 것입니다. 우리는 아저씨, 사랑하는 아저씨, 밝고 우아한 삶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기뻐하고 지금의 이 불행을 감격에 젖어 미소 짓고 돌아볼 것입니다. 그리고 쉴 거예요. 저는 믿어요, 아저씨, 저는 뜨겁고 간절하게 믿어요.

 

상실의 시대가 지나가는 법… <드라이브 마이카> 하마구치 류스케의 <드라이브 마이카>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동명의 단편을 원작으로 해 만든 영화라고 한다.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 때처럼 ‘드라이브 마이카’도 주변 사람들이 추천해줘서 영화관에서 봐야 했는데 근처에 상영할 곳이 없어 결국 이제서야 보게 됐다.(국내 개봉 1주년을 맞아 얼마 전 재개봉을 했는데 역시 이번에도 근처에 상영할 곳이 없었다. 덕분에 이 영화가 생각나서 볼 수 있었던 게 다행인데요.평소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해서 그의 장편과 단편소설 그리고 에세이까지 많이 읽은 편이지만 <드라이브 마이카>가 수록된 단편집 <여자 없는 남자들>은 읽어본 적이 없다. 원작을 영화화했다고 해서 단편소설을 먼저 읽고 영화를 볼까 했는데 영화 러닝타임이 3시간 가까이 되는 걸 보고 영화는 대략 원작의 뼈대 정도만 가져와 감독이 재구성했을 것 같아 이번에는 영화를 먼저 보고 원작을 읽기로 했다.(지금 내 책상 위에 여자 없는 남자들이 있다) 영화의 주인공인 가복은 연극배우이자 연출가이고 아내인 오토는 TV 드라마 작가다. 부러울 게 없어 보이는 부부.그러나 어느 날 허베이는 아내의 외도를 목격하지만 이에 대해 모른 척 지나쳐 버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는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는다.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는 부부가 어느 날 아무런 이유 없이 아내의 가출 혹은 외도로 남자는 홀로 남겨지고 그 남자는 무언가를 찾기 위해 길로 나선다는 점에서 하베이는 ‘전형적인’ 하루키 세계의 남자다. 오토는 쓰러지기 전 뭔가 결심하고 저녁에 할 얘기가 있다고 출근하는 까옥에게 말하지만 까옥은 그녀가 털어놓을까봐 일부러 아무것도 하지 않고 돌아다녔다. 늦게 집에 돌아와 쓰러져 있는 오토를 발견하지만 그녀는 이미 사망한 뒤였다. 아내의 외도를 알고 있었지만 여전히 그녀를 사랑했던 가와키타는 큰 상실감에 빠져 히로시마 연극제에 참가하기 위해 떠난다. 여기서 자신의 차를 운전해 주는 운전자 마사키를 만난 가호쿠(河北. 말수가 적은 마사키는 묵묵히 하북의 차를 몰지만 마사키에게도 어머니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가호쿠는 아내의 죽음에 대해, 미사키는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각각 상처를 안고 있는 것이다.하지만 아무리 이해한다고 생각하는 상대도, 아무리 사랑하는 상대도 다른 사람의 마음을 그대로 보는 것은 무리입니다. 자신이 힘들어질 뿐이에요. 그래도 그것이 자신의 마음이라면 노력에 따라 확실히 엿볼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자신의 마음과 능숙하게 솔직하게 타협해 나가는 것이 아닐까요. 정말 다른 사람을 만나고 싶다면 나 자신을 깊이 지켜볼 수밖에 없어요.마사키는 어머니의 죽음과 얽힌 사연을 가와이에게 들려주면서 정말 다른 사람을 만나고 싶다면 먼저 자신을 깊이 지켜봐야 한다고 말하고, 가와이는 진실을 마주할까 두려워 자신의 내면을 무시했음을 깨닫는다. 카와키타(河北)는 미사코(美佐子)에게 말한다.살아남은 자는 죽은 자를 계속 기억한다. 어떤 형태로든 그것이 이어진다. 나와 당신은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어. 살아야지. 괜찮아 우린 분명 괜찮을거야.그리하여 가와키타와 미사키는 그동안 어깨에 무겁게 짊어지고 있던 상실의 아픔을 치유한다. 〈드라이브 마이카〉는 극중 안톤 체호프의 〈바냐 아저씨〉를 만드는 과정이 중요한 요소로 등장한다. 여기서 한 가지 독특한 설정이 나오는데 바로 연극의 등장인물을 여러 나라 배우들로 골라 배우들은 자기 나라 말로 대사를 한다. 심지어 청각장애인 배우가 대사를 수화로 말한다. 그래서 한 연극에서 일본어, 중국어, 한국어, 수화가 등장하는 것이다. 배우들은 나와는 다른 언어의 상대방 대사를 듣고 그것에 리액션을 해야 한다. 같은 나라 말을 써도 배우 간 궁합이 생길까 말까 한 연극으로 유명 관광지처럼 여러 나라 말이 섞이다니. 감독의 의도는 뭘까. 본인의 배역에 자신이 없었던 다카쓰키가 가와키타에게 고민을 털어놓자 가와키타는 자신을 바쳐 대본에 답하겠다. 대본이 너에게 묻고 있어. 그 말을 듣고 대답하면 당신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조언한다. 상대방이 어느 나라 말을 하느냐가 중요하지 않다. 대본이 무엇을 묻고 있는지 귀를 기울이라는 게 감독이 말하려는 게 아닌가. 이는 위에서 언급한 진실로 남을 만나고 싶으면 자기 자신을 깊이 똑바로 보라는 미사코의 말과도 이어진다. 다카쓰키는 평소 드라이브 중 아내가 녹음해 준 연극 대사에 맞춰 바냐 삼촌 역을 열심히 연습하던 가와베이에게 왜 바냐 삼촌 역을 연기하지 않느냐고 묻자 가와베이는 체홉은 무섭다. 그의 대사를 들으면 나 자신이 끌려나온다며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는 것을 두려워하지만 미사코와의 홋카이도 여행을 통해 아픔을 달래고 바냐 아저씨씩 역을 맡는다. 바야흐로 자신과 당당히 마주할 수 있게 된 것이다.극은 영화는 소냐의 감동적인 수화로 끝이 난다.바냐 아저씨 사는 거예요. 길고 긴 낮과 긴 밤을 살아갑니다. 운명이 우리에게 주는 시련을 참아요. 지금도, 늙은 후에도 쉬지 말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일하세요. 그리고 우리 때가 와서 조용히 죽고 무덤에 가면 얘기해요. 얼마나 힘들었는지, 얼마나 울었는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하나님이 불쌍히 여길 것입니다. 우리는 아저씨, 사랑하는 아저씨, 밝고 우아한 삶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기뻐하고 지금의 이 불행을 감격에 젖어 미소 짓고 돌아볼 것입니다. 그리고 쉴 거예요. 저는 믿어요, 아저씨, 저는 뜨겁고 간절하게 믿어요.https://blogger.googleusercontent.com/img/b/R29vZ2xl/AVvXsEj-MSN-j_3JOteSJ9l7lOW6TyYE9DDjnHe0owIfcn0O96q24yLoLKQItaLYkNiUS-BZxT8ynH_HteW3oSg1nFpjFAnvgZuPzBIwnyW8NrMuu1hgpapdfRdWtguSDAx4PxjpFi6Qhfp7qXeEYK080PrVUg5VkeL7-REaIfdjrxabiGJ0KCn0UOTk6doJGQ/w1200-h630-p-k-no-nu/36e754027bdbe5dbf9f8b4c7458168acc4cbb1b2.jpg

상실의 시대가 지나가는 법… <드라이브 마이카> 하마구치 류스케의 <드라이브 마이카>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동명의 단편을 원작으로 해 만든 영화라고 한다.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 때처럼 ‘드라이브 마이카’도 주변 사람들이 추천해줘서 영화관에서 봐야 했는데 근처에 상영할 곳이 없어 결국 이제서야 보게 됐다.(국내 개봉 1주년을 맞아 얼마 전 재개봉을 했는데 역시 이번에도 근처에 상영할 곳이 없었다. 덕분에 이 영화가 생각나서 볼 수 있었던 게 다행인데요.평소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해서 그의 장편과 단편소설 그리고 에세이까지 많이 읽은 편이지만 <드라이브 마이카>가 수록된 단편집 <여자 없는 남자들>은 읽어본 적이 없다. 원작을 영화화했다고 해서 단편소설을 먼저 읽고 영화를 볼까 했는데 영화 러닝타임이 3시간 가까이 되는 걸 보고 영화는 대략 원작의 뼈대 정도만 가져와 감독이 재구성했을 것 같아 이번에는 영화를 먼저 보고 원작을 읽기로 했다.(지금 내 책상 위에 여자 없는 남자들이 있다) 영화의 주인공인 가복은 연극배우이자 연출가이고 아내인 오토는 TV 드라마 작가다. 부러울 게 없어 보이는 부부.그러나 어느 날 허베이는 아내의 외도를 목격하지만 이에 대해 모른 척 지나쳐 버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는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는다.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는 부부가 어느 날 아무런 이유 없이 아내의 가출 혹은 외도로 남자는 홀로 남겨지고 그 남자는 무언가를 찾기 위해 길로 나선다는 점에서 하베이는 ‘전형적인’ 하루키 세계의 남자다. 오토는 쓰러지기 전 뭔가 결심하고 저녁에 할 얘기가 있다고 출근하는 까옥에게 말하지만 까옥은 그녀가 털어놓을까봐 일부러 아무것도 하지 않고 돌아다녔다. 늦게 집에 돌아와 쓰러져 있는 오토를 발견하지만 그녀는 이미 사망한 뒤였다. 아내의 외도를 알고 있었지만 여전히 그녀를 사랑했던 가와키타는 큰 상실감에 빠져 히로시마 연극제에 참가하기 위해 떠난다. 여기서 자신의 차를 운전해 주는 운전자 마사키를 만난 가호쿠(河北. 말수가 적은 마사키는 묵묵히 하북의 차를 몰지만 마사키에게도 어머니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가호쿠는 아내의 죽음에 대해, 미사키는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각각 상처를 안고 있는 것이다.하지만 아무리 이해한다고 생각하는 상대도, 아무리 사랑하는 상대도 다른 사람의 마음을 그대로 보는 것은 무리입니다. 자신이 힘들어질 뿐이에요. 그래도 그것이 자신의 마음이라면 노력에 따라 확실히 엿볼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자신의 마음과 능숙하게 솔직하게 타협해 나가는 것이 아닐까요. 정말 다른 사람을 만나고 싶다면 나 자신을 깊이 지켜볼 수밖에 없어요.마사키는 어머니의 죽음과 얽힌 사연을 가와이에게 들려주면서 정말 다른 사람을 만나고 싶다면 먼저 자신을 깊이 지켜봐야 한다고 말하고, 가와이는 진실을 마주할까 두려워 자신의 내면을 무시했음을 깨닫는다. 카와키타(河北)는 미사코(美佐子)에게 말한다.살아남은 자는 죽은 자를 계속 기억한다. 어떤 형태로든 그것이 이어진다. 나와 당신은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어. 살아야지. 괜찮아 우린 분명 괜찮을거야.그리하여 가와키타와 미사키는 그동안 어깨에 무겁게 짊어지고 있던 상실의 아픔을 치유한다. 〈드라이브 마이카〉는 극중 안톤 체호프의 〈바냐 아저씨〉를 만드는 과정이 중요한 요소로 등장한다. 여기서 한 가지 독특한 설정이 나오는데 바로 연극의 등장인물을 여러 나라 배우들로 골라 배우들은 자기 나라 말로 대사를 한다. 심지어 청각장애인 배우가 대사를 수화로 말한다. 그래서 한 연극에서 일본어, 중국어, 한국어, 수화가 등장하는 것이다. 배우들은 나와는 다른 언어의 상대방 대사를 듣고 그것에 리액션을 해야 한다. 같은 나라 말을 써도 배우 간 궁합이 생길까 말까 한 연극으로 유명 관광지처럼 여러 나라 말이 섞이다니. 감독의 의도는 뭘까. 본인의 배역에 자신이 없었던 다카쓰키가 가와키타에게 고민을 털어놓자 가와키타는 자신을 바쳐 대본에 답하겠다. 대본이 너에게 묻고 있어. 그 말을 듣고 대답하면 당신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조언한다. 상대방이 어느 나라 말을 하느냐가 중요하지 않다. 대본이 무엇을 묻고 있는지 귀를 기울이라는 게 감독이 말하려는 게 아닌가. 이는 위에서 언급한 진실로 남을 만나고 싶으면 자기 자신을 깊이 똑바로 보라는 미사코의 말과도 이어진다. 다카쓰키는 평소 드라이브 중 아내가 녹음해 준 연극 대사에 맞춰 바냐 삼촌 역을 열심히 연습하던 가와베이에게 왜 바냐 삼촌 역을 연기하지 않느냐고 묻자 가와베이는 체홉은 무섭다. 그의 대사를 들으면 나 자신이 끌려나온다며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는 것을 두려워하지만 미사코와의 홋카이도 여행을 통해 아픔을 달래고 바냐 아저씨씩 역을 맡는다. 바야흐로 자신과 당당히 마주할 수 있게 된 것이다.극은 영화는 소냐의 감동적인 수화로 끝이 난다.바냐 아저씨 사는 거예요. 길고 긴 낮과 긴 밤을 살아갑니다. 운명이 우리에게 주는 시련을 참아요. 지금도, 늙은 후에도 쉬지 말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일하세요. 그리고 우리 때가 와서 조용히 죽고 무덤에 가면 얘기해요. 얼마나 힘들었는지, 얼마나 울었는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하나님이 불쌍히 여길 것입니다. 우리는 아저씨, 사랑하는 아저씨, 밝고 우아한 삶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기뻐하고 지금의 이 불행을 감격에 젖어 미소 짓고 돌아볼 것입니다. 그리고 쉴 거예요. 저는 믿어요, 아저씨, 저는 뜨겁고 간절하게 믿어요.

상실의 시대가 지나가는 법… <드라이브 마이카> 하마구치 류스케의 <드라이브 마이카>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동명의 단편을 원작으로 해 만든 영화라고 한다.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 때처럼 ‘드라이브 마이카’도 주변 사람들이 추천해줘서 영화관에서 봐야 했는데 근처에 상영할 곳이 없어 결국 이제서야 보게 됐다.(국내 개봉 1주년을 맞아 얼마 전 재개봉을 했는데 역시 이번에도 근처에 상영할 곳이 없었다. 덕분에 이 영화가 생각나서 볼 수 있었던 게 다행인데요.평소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해서 그의 장편과 단편소설 그리고 에세이까지 많이 읽은 편이지만 <드라이브 마이카>가 수록된 단편집 <여자 없는 남자들>은 읽어본 적이 없다. 원작을 영화화했다고 해서 단편소설을 먼저 읽고 영화를 볼까 했는데 영화 러닝타임이 3시간 가까이 되는 걸 보고 영화는 대략 원작의 뼈대 정도만 가져와 감독이 재구성했을 것 같아 이번에는 영화를 먼저 보고 원작을 읽기로 했다.(지금 내 책상 위에 여자 없는 남자들이 있다) 영화의 주인공인 가복은 연극배우이자 연출가이고 아내인 오토는 TV 드라마 작가다. 부러울 게 없어 보이는 부부.그러나 어느 날 허베이는 아내의 외도를 목격하지만 이에 대해 모른 척 지나쳐 버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는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는다.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는 부부가 어느 날 아무런 이유 없이 아내의 가출 혹은 외도로 남자는 홀로 남겨지고 그 남자는 무언가를 찾기 위해 길로 나선다는 점에서 하베이는 ‘전형적인’ 하루키 세계의 남자다. 오토는 쓰러지기 전 뭔가 결심하고 저녁에 할 얘기가 있다고 출근하는 까옥에게 말하지만 까옥은 그녀가 털어놓을까봐 일부러 아무것도 하지 않고 돌아다녔다. 늦게 집에 돌아와 쓰러져 있는 오토를 발견하지만 그녀는 이미 사망한 뒤였다. 아내의 외도를 알고 있었지만 여전히 그녀를 사랑했던 가와키타는 큰 상실감에 빠져 히로시마 연극제에 참가하기 위해 떠난다. 여기서 자신의 차를 운전해 주는 운전자 마사키를 만난 가호쿠(河北. 말수가 적은 마사키는 묵묵히 하북의 차를 몰지만 마사키에게도 어머니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가호쿠는 아내의 죽음에 대해, 미사키는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각각 상처를 안고 있는 것이다.하지만 아무리 이해한다고 생각하는 상대도, 아무리 사랑하는 상대도 다른 사람의 마음을 그대로 보는 것은 무리입니다. 자신이 힘들어질 뿐이에요. 그래도 그것이 자신의 마음이라면 노력에 따라 확실히 엿볼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자신의 마음과 능숙하게 솔직하게 타협해 나가는 것이 아닐까요. 정말 다른 사람을 만나고 싶다면 나 자신을 깊이 지켜볼 수밖에 없어요.마사키는 어머니의 죽음과 얽힌 사연을 가와이에게 들려주면서 정말 다른 사람을 만나고 싶다면 먼저 자신을 깊이 지켜봐야 한다고 말하고, 가와이는 진실을 마주할까 두려워 자신의 내면을 무시했음을 깨닫는다. 카와키타(河北)는 미사코(美佐子)에게 말한다.살아남은 자는 죽은 자를 계속 기억한다. 어떤 형태로든 그것이 이어진다. 나와 당신은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어. 살아야지. 괜찮아 우린 분명 괜찮을거야.그리하여 가와키타와 미사키는 그동안 어깨에 무겁게 짊어지고 있던 상실의 아픔을 치유한다. 〈드라이브 마이카〉는 극중 안톤 체호프의 〈바냐 아저씨〉를 만드는 과정이 중요한 요소로 등장한다. 여기서 한 가지 독특한 설정이 나오는데 바로 연극의 등장인물을 여러 나라 배우들로 골라 배우들은 자기 나라 말로 대사를 한다. 심지어 청각장애인 배우가 대사를 수화로 말한다. 그래서 한 연극에서 일본어, 중국어, 한국어, 수화가 등장하는 것이다. 배우들은 나와는 다른 언어의 상대방 대사를 듣고 그것에 리액션을 해야 한다. 같은 나라 말을 써도 배우 간 궁합이 생길까 말까 한 연극으로 유명 관광지처럼 여러 나라 말이 섞이다니. 감독의 의도는 뭘까. 본인의 배역에 자신이 없었던 다카쓰키가 가와키타에게 고민을 털어놓자 가와키타는 자신을 바쳐 대본에 답하겠다. 대본이 너에게 묻고 있어. 그 말을 듣고 대답하면 당신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조언한다. 상대방이 어느 나라 말을 하느냐가 중요하지 않다. 대본이 무엇을 묻고 있는지 귀를 기울이라는 게 감독이 말하려는 게 아닌가. 이는 위에서 언급한 진실로 남을 만나고 싶으면 자기 자신을 깊이 똑바로 보라는 미사코의 말과도 이어진다. 다카쓰키는 평소 드라이브 중 아내가 녹음해 준 연극 대사에 맞춰 바냐 삼촌 역을 열심히 연습하던 가와베이에게 왜 바냐 삼촌 역을 연기하지 않느냐고 묻자 가와베이는 체홉은 무섭다. 그의 대사를 들으면 나 자신이 끌려나온다며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는 것을 두려워하지만 미사코와의 홋카이도 여행을 통해 아픔을 달래고 바냐 아저씨씩 역을 맡는다. 바야흐로 자신과 당당히 마주할 수 있게 된 것이다.극은 영화는 소냐의 감동적인 수화로 끝이 난다.바냐 아저씨 사는 거예요. 길고 긴 낮과 긴 밤을 살아갑니다. 운명이 우리에게 주는 시련을 참아요. 지금도, 늙은 후에도 쉬지 말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일하세요. 그리고 우리 때가 와서 조용히 죽고 무덤에 가면 얘기해요. 얼마나 힘들었는지, 얼마나 울었는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하나님이 불쌍히 여길 것입니다. 우리는 아저씨, 사랑하는 아저씨, 밝고 우아한 삶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기뻐하고 지금의 이 불행을 감격에 젖어 미소 짓고 돌아볼 것입니다. 그리고 쉴 거예요. 저는 믿어요, 아저씨, 저는 뜨겁고 간절하게 믿어요.

상실의 시대가 지나가는 법… <드라이브 마이카> 하마구치 류스케의 <드라이브 마이카>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동명의 단편을 원작으로 해 만든 영화라고 한다.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 때처럼 ‘드라이브 마이카’도 주변 사람들이 추천해줘서 영화관에서 봐야 했는데 근처에 상영할 곳이 없어 결국 이제서야 보게 됐다.(국내 개봉 1주년을 맞아 얼마 전 재개봉을 했는데 역시 이번에도 근처에 상영할 곳이 없었다. 덕분에 이 영화가 생각나서 볼 수 있었던 게 다행인데요.평소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해서 그의 장편과 단편소설 그리고 에세이까지 많이 읽은 편이지만 <드라이브 마이카>가 수록된 단편집 <여자 없는 남자들>은 읽어본 적이 없다. 원작을 영화화했다고 해서 단편소설을 먼저 읽고 영화를 볼까 했는데 영화 러닝타임이 3시간 가까이 되는 걸 보고 영화는 대략 원작의 뼈대 정도만 가져와 감독이 재구성했을 것 같아 이번에는 영화를 먼저 보고 원작을 읽기로 했다.(지금 내 책상 위에 여자 없는 남자들이 있다) 영화의 주인공인 가복은 연극배우이자 연출가이고 아내인 오토는 TV 드라마 작가다. 부러울 게 없어 보이는 부부.그러나 어느 날 허베이는 아내의 외도를 목격하지만 이에 대해 모른 척 지나쳐 버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는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는다.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는 부부가 어느 날 아무런 이유 없이 아내의 가출 혹은 외도로 남자는 홀로 남겨지고 그 남자는 무언가를 찾기 위해 길로 나선다는 점에서 하베이는 ‘전형적인’ 하루키 세계의 남자다. 오토는 쓰러지기 전 뭔가 결심하고 저녁에 할 얘기가 있다고 출근하는 까옥에게 말하지만 까옥은 그녀가 털어놓을까봐 일부러 아무것도 하지 않고 돌아다녔다. 늦게 집에 돌아와 쓰러져 있는 오토를 발견하지만 그녀는 이미 사망한 뒤였다. 아내의 외도를 알고 있었지만 여전히 그녀를 사랑했던 가와키타는 큰 상실감에 빠져 히로시마 연극제에 참가하기 위해 떠난다. 여기서 자신의 차를 운전해 주는 운전자 마사키를 만난 가호쿠(河北. 말수가 적은 마사키는 묵묵히 하북의 차를 몰지만 마사키에게도 어머니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가호쿠는 아내의 죽음에 대해, 미사키는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각각 상처를 안고 있는 것이다.하지만 아무리 이해한다고 생각하는 상대도, 아무리 사랑하는 상대도 다른 사람의 마음을 그대로 보는 것은 무리입니다. 자신이 힘들어질 뿐이에요. 그래도 그것이 자신의 마음이라면 노력에 따라 확실히 엿볼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자신의 마음과 능숙하게 솔직하게 타협해 나가는 것이 아닐까요. 정말 다른 사람을 만나고 싶다면 나 자신을 깊이 지켜볼 수밖에 없어요.마사키는 어머니의 죽음과 얽힌 사연을 가와이에게 들려주면서 정말 다른 사람을 만나고 싶다면 먼저 자신을 깊이 지켜봐야 한다고 말하고, 가와이는 진실을 마주할까 두려워 자신의 내면을 무시했음을 깨닫는다. 카와키타(河北)는 미사코(美佐子)에게 말한다.살아남은 자는 죽은 자를 계속 기억한다. 어떤 형태로든 그것이 이어진다. 나와 당신은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어. 살아야지. 괜찮아 우린 분명 괜찮을거야.그리하여 가와키타와 미사키는 그동안 어깨에 무겁게 짊어지고 있던 상실의 아픔을 치유한다. 〈드라이브 마이카〉는 극중 안톤 체호프의 〈바냐 아저씨〉를 만드는 과정이 중요한 요소로 등장한다. 여기서 한 가지 독특한 설정이 나오는데 바로 연극의 등장인물을 여러 나라 배우들로 골라 배우들은 자기 나라 말로 대사를 한다. 심지어 청각장애인 배우가 대사를 수화로 말한다. 그래서 한 연극에서 일본어, 중국어, 한국어, 수화가 등장하는 것이다. 배우들은 나와는 다른 언어의 상대방 대사를 듣고 그것에 리액션을 해야 한다. 같은 나라 말을 써도 배우 간 궁합이 생길까 말까 한 연극으로 유명 관광지처럼 여러 나라 말이 섞이다니. 감독의 의도는 뭘까. 본인의 배역에 자신이 없었던 다카쓰키가 가와키타에게 고민을 털어놓자 가와키타는 자신을 바쳐 대본에 답하겠다. 대본이 너에게 묻고 있어. 그 말을 듣고 대답하면 당신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조언한다. 상대방이 어느 나라 말을 하느냐가 중요하지 않다. 대본이 무엇을 묻고 있는지 귀를 기울이라는 게 감독이 말하려는 게 아닌가. 이는 위에서 언급한 진실로 남을 만나고 싶으면 자기 자신을 깊이 똑바로 보라는 미사코의 말과도 이어진다. 다카쓰키는 평소 드라이브 중 아내가 녹음해 준 연극 대사에 맞춰 바냐 삼촌 역을 열심히 연습하던 가와베이에게 왜 바냐 삼촌 역을 연기하지 않느냐고 묻자 가와베이는 체홉은 무섭다. 그의 대사를 들으면 나 자신이 끌려나온다며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는 것을 두려워하지만 미사코와의 홋카이도 여행을 통해 아픔을 달래고 바냐 아저씨씩 역을 맡는다. 바야흐로 자신과 당당히 마주할 수 있게 된 것이다.극은 영화는 소냐의 감동적인 수화로 끝이 난다.바냐 아저씨 사는 거예요. 길고 긴 낮과 긴 밤을 살아갑니다. 운명이 우리에게 주는 시련을 참아요. 지금도, 늙은 후에도 쉬지 말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일하세요. 그리고 우리 때가 와서 조용히 죽고 무덤에 가면 얘기해요. 얼마나 힘들었는지, 얼마나 울었는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하나님이 불쌍히 여길 것입니다. 우리는 아저씨, 사랑하는 아저씨, 밝고 우아한 삶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기뻐하고 지금의 이 불행을 감격에 젖어 미소 짓고 돌아볼 것입니다. 그리고 쉴 거예요. 저는 믿어요, 아저씨, 저는 뜨겁고 간절하게 믿어요.

상실의 시대가 지나가는 법… <드라이브 마이카> 하마구치 류스케의 <드라이브 마이카>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동명의 단편을 원작으로 해 만든 영화라고 한다.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 때처럼 ‘드라이브 마이카’도 주변 사람들이 추천해줘서 영화관에서 봐야 했는데 근처에 상영할 곳이 없어 결국 이제서야 보게 됐다.(국내 개봉 1주년을 맞아 얼마 전 재개봉을 했는데 역시 이번에도 근처에 상영할 곳이 없었다. 덕분에 이 영화가 생각나서 볼 수 있었던 게 다행인데요.평소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해서 그의 장편과 단편소설 그리고 에세이까지 많이 읽은 편이지만 <드라이브 마이카>가 수록된 단편집 <여자 없는 남자들>은 읽어본 적이 없다. 원작을 영화화했다고 해서 단편소설을 먼저 읽고 영화를 볼까 했는데 영화 러닝타임이 3시간 가까이 되는 걸 보고 영화는 대략 원작의 뼈대 정도만 가져와 감독이 재구성했을 것 같아 이번에는 영화를 먼저 보고 원작을 읽기로 했다.(지금 내 책상 위에 여자 없는 남자들이 있다) 영화의 주인공인 가복은 연극배우이자 연출가이고 아내인 오토는 TV 드라마 작가다. 부러울 게 없어 보이는 부부.그러나 어느 날 허베이는 아내의 외도를 목격하지만 이에 대해 모른 척 지나쳐 버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는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는다.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는 부부가 어느 날 아무런 이유 없이 아내의 가출 혹은 외도로 남자는 홀로 남겨지고 그 남자는 무언가를 찾기 위해 길로 나선다는 점에서 하베이는 ‘전형적인’ 하루키 세계의 남자다. 오토는 쓰러지기 전 뭔가 결심하고 저녁에 할 얘기가 있다고 출근하는 까옥에게 말하지만 까옥은 그녀가 털어놓을까봐 일부러 아무것도 하지 않고 돌아다녔다. 늦게 집에 돌아와 쓰러져 있는 오토를 발견하지만 그녀는 이미 사망한 뒤였다. 아내의 외도를 알고 있었지만 여전히 그녀를 사랑했던 가와키타는 큰 상실감에 빠져 히로시마 연극제에 참가하기 위해 떠난다. 여기서 자신의 차를 운전해 주는 운전자 마사키를 만난 가호쿠(河北. 말수가 적은 마사키는 묵묵히 하북의 차를 몰지만 마사키에게도 어머니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가호쿠는 아내의 죽음에 대해, 미사키는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각각 상처를 안고 있는 것이다.하지만 아무리 이해한다고 생각하는 상대도, 아무리 사랑하는 상대도 다른 사람의 마음을 그대로 보는 것은 무리입니다. 자신이 힘들어질 뿐이에요. 그래도 그것이 자신의 마음이라면 노력에 따라 확실히 엿볼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자신의 마음과 능숙하게 솔직하게 타협해 나가는 것이 아닐까요. 정말 다른 사람을 만나고 싶다면 나 자신을 깊이 지켜볼 수밖에 없어요.마사키는 어머니의 죽음과 얽힌 사연을 가와이에게 들려주면서 정말 다른 사람을 만나고 싶다면 먼저 자신을 깊이 지켜봐야 한다고 말하고, 가와이는 진실을 마주할까 두려워 자신의 내면을 무시했음을 깨닫는다. 카와키타(河北)는 미사코(美佐子)에게 말한다.살아남은 자는 죽은 자를 계속 기억한다. 어떤 형태로든 그것이 이어진다. 나와 당신은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어. 살아야지. 괜찮아 우린 분명 괜찮을거야.그리하여 가와키타와 미사키는 그동안 어깨에 무겁게 짊어지고 있던 상실의 아픔을 치유한다. 〈드라이브 마이카〉는 극중 안톤 체호프의 〈바냐 아저씨〉를 만드는 과정이 중요한 요소로 등장한다. 여기서 한 가지 독특한 설정이 나오는데 바로 연극의 등장인물을 여러 나라 배우들로 골라 배우들은 자기 나라 말로 대사를 한다. 심지어 청각장애인 배우가 대사를 수화로 말한다. 그래서 한 연극에서 일본어, 중국어, 한국어, 수화가 등장하는 것이다. 배우들은 나와는 다른 언어의 상대방 대사를 듣고 그것에 리액션을 해야 한다. 같은 나라 말을 써도 배우 간 궁합이 생길까 말까 한 연극으로 유명 관광지처럼 여러 나라 말이 섞이다니. 감독의 의도는 뭘까. 본인의 배역에 자신이 없었던 다카쓰키가 가와키타에게 고민을 털어놓자 가와키타는 자신을 바쳐 대본에 답하겠다. 대본이 너에게 묻고 있어. 그 말을 듣고 대답하면 당신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조언한다. 상대방이 어느 나라 말을 하느냐가 중요하지 않다. 대본이 무엇을 묻고 있는지 귀를 기울이라는 게 감독이 말하려는 게 아닌가. 이는 위에서 언급한 진실로 남을 만나고 싶으면 자기 자신을 깊이 똑바로 보라는 미사코의 말과도 이어진다. 다카쓰키는 평소 드라이브 중 아내가 녹음해 준 연극 대사에 맞춰 바냐 삼촌 역을 열심히 연습하던 가와베이에게 왜 바냐 삼촌 역을 연기하지 않느냐고 묻자 가와베이는 체홉은 무섭다. 그의 대사를 들으면 나 자신이 끌려나온다며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는 것을 두려워하지만 미사코와의 홋카이도 여행을 통해 아픔을 달래고 바냐 아저씨씩 역을 맡는다. 바야흐로 자신과 당당히 마주할 수 있게 된 것이다.극은 영화는 소냐의 감동적인 수화로 끝이 난다.바냐 아저씨 사는 거예요. 길고 긴 낮과 긴 밤을 살아갑니다. 운명이 우리에게 주는 시련을 참아요. 지금도, 늙은 후에도 쉬지 말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일하세요. 그리고 우리 때가 와서 조용히 죽고 무덤에 가면 얘기해요. 얼마나 힘들었는지, 얼마나 울었는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하나님이 불쌍히 여길 것입니다. 우리는 아저씨, 사랑하는 아저씨, 밝고 우아한 삶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기뻐하고 지금의 이 불행을 감격에 젖어 미소 짓고 돌아볼 것입니다. 그리고 쉴 거예요. 저는 믿어요, 아저씨, 저는 뜨겁고 간절하게 믿어요.

상실의 시대가 지나가는 법… <드라이브 마이카> 하마구치 류스케의 <드라이브 마이카>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동명의 단편을 원작으로 해 만든 영화라고 한다.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 때처럼 ‘드라이브 마이카’도 주변 사람들이 추천해줘서 영화관에서 봐야 했는데 근처에 상영할 곳이 없어 결국 이제서야 보게 됐다.(국내 개봉 1주년을 맞아 얼마 전 재개봉을 했는데 역시 이번에도 근처에 상영할 곳이 없었다. 덕분에 이 영화가 생각나서 볼 수 있었던 게 다행인데요.평소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해서 그의 장편과 단편소설 그리고 에세이까지 많이 읽은 편이지만 <드라이브 마이카>가 수록된 단편집 <여자 없는 남자들>은 읽어본 적이 없다. 원작을 영화화했다고 해서 단편소설을 먼저 읽고 영화를 볼까 했는데 영화 러닝타임이 3시간 가까이 되는 걸 보고 영화는 대략 원작의 뼈대 정도만 가져와 감독이 재구성했을 것 같아 이번에는 영화를 먼저 보고 원작을 읽기로 했다.(지금 내 책상 위에 여자 없는 남자들이 있다) 영화의 주인공인 가복은 연극배우이자 연출가이고 아내인 오토는 TV 드라마 작가다. 부러울 게 없어 보이는 부부.그러나 어느 날 허베이는 아내의 외도를 목격하지만 이에 대해 모른 척 지나쳐 버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는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는다.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는 부부가 어느 날 아무런 이유 없이 아내의 가출 혹은 외도로 남자는 홀로 남겨지고 그 남자는 무언가를 찾기 위해 길로 나선다는 점에서 하베이는 ‘전형적인’ 하루키 세계의 남자다. 오토는 쓰러지기 전 뭔가 결심하고 저녁에 할 얘기가 있다고 출근하는 까옥에게 말하지만 까옥은 그녀가 털어놓을까봐 일부러 아무것도 하지 않고 돌아다녔다. 늦게 집에 돌아와 쓰러져 있는 오토를 발견하지만 그녀는 이미 사망한 뒤였다. 아내의 외도를 알고 있었지만 여전히 그녀를 사랑했던 가와키타는 큰 상실감에 빠져 히로시마 연극제에 참가하기 위해 떠난다. 여기서 자신의 차를 운전해 주는 운전자 마사키를 만난 가호쿠(河北. 말수가 적은 마사키는 묵묵히 하북의 차를 몰지만 마사키에게도 어머니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가호쿠는 아내의 죽음에 대해, 미사키는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각각 상처를 안고 있는 것이다.하지만 아무리 이해한다고 생각하는 상대도, 아무리 사랑하는 상대도 다른 사람의 마음을 그대로 보는 것은 무리입니다. 자신이 힘들어질 뿐이에요. 그래도 그것이 자신의 마음이라면 노력에 따라 확실히 엿볼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자신의 마음과 능숙하게 솔직하게 타협해 나가는 것이 아닐까요. 정말 다른 사람을 만나고 싶다면 나 자신을 깊이 지켜볼 수밖에 없어요.마사키는 어머니의 죽음과 얽힌 사연을 가와이에게 들려주면서 정말 다른 사람을 만나고 싶다면 먼저 자신을 깊이 지켜봐야 한다고 말하고, 가와이는 진실을 마주할까 두려워 자신의 내면을 무시했음을 깨닫는다. 카와키타(河北)는 미사코(美佐子)에게 말한다.살아남은 자는 죽은 자를 계속 기억한다. 어떤 형태로든 그것이 이어진다. 나와 당신은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어. 살아야지. 괜찮아 우린 분명 괜찮을거야.그리하여 가와키타와 미사키는 그동안 어깨에 무겁게 짊어지고 있던 상실의 아픔을 치유한다. 〈드라이브 마이카〉는 극중 안톤 체호프의 〈바냐 아저씨〉를 만드는 과정이 중요한 요소로 등장한다. 여기서 한 가지 독특한 설정이 나오는데 바로 연극의 등장인물을 여러 나라 배우들로 골라 배우들은 자기 나라 말로 대사를 한다. 심지어 청각장애인 배우가 대사를 수화로 말한다. 그래서 한 연극에서 일본어, 중국어, 한국어, 수화가 등장하는 것이다. 배우들은 나와는 다른 언어의 상대방 대사를 듣고 그것에 리액션을 해야 한다. 같은 나라 말을 써도 배우 간 궁합이 생길까 말까 한 연극으로 유명 관광지처럼 여러 나라 말이 섞이다니. 감독의 의도는 뭘까. 본인의 배역에 자신이 없었던 다카쓰키가 가와키타에게 고민을 털어놓자 가와키타는 자신을 바쳐 대본에 답하겠다. 대본이 너에게 묻고 있어. 그 말을 듣고 대답하면 당신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조언한다. 상대방이 어느 나라 말을 하느냐가 중요하지 않다. 대본이 무엇을 묻고 있는지 귀를 기울이라는 게 감독이 말하려는 게 아닌가. 이는 위에서 언급한 진실로 남을 만나고 싶으면 자기 자신을 깊이 똑바로 보라는 미사코의 말과도 이어진다. 다카쓰키는 평소 드라이브 중 아내가 녹음해 준 연극 대사에 맞춰 바냐 삼촌 역을 열심히 연습하던 가와베이에게 왜 바냐 삼촌 역을 연기하지 않느냐고 묻자 가와베이는 체홉은 무섭다. 그의 대사를 들으면 나 자신이 끌려나온다며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는 것을 두려워하지만 미사코와의 홋카이도 여행을 통해 아픔을 달래고 바냐 아저씨씩 역을 맡는다. 바야흐로 자신과 당당히 마주할 수 있게 된 것이다.극은 영화는 소냐의 감동적인 수화로 끝이 난다.바냐 아저씨 사는 거예요. 길고 긴 낮과 긴 밤을 살아갑니다. 운명이 우리에게 주는 시련을 참아요. 지금도, 늙은 후에도 쉬지 말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일하세요. 그리고 우리 때가 와서 조용히 죽고 무덤에 가면 얘기해요. 얼마나 힘들었는지, 얼마나 울었는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하나님이 불쌍히 여길 것입니다. 우리는 아저씨, 사랑하는 아저씨, 밝고 우아한 삶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기뻐하고 지금의 이 불행을 감격에 젖어 미소 짓고 돌아볼 것입니다. 그리고 쉴 거예요. 저는 믿어요, 아저씨, 저는 뜨겁고 간절하게 믿어요.

상실의 시대가 지나가는 법… <드라이브 마이카> 하마구치 류스케의 <드라이브 마이카>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동명의 단편을 원작으로 해 만든 영화라고 한다.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 때처럼 ‘드라이브 마이카’도 주변 사람들이 추천해줘서 영화관에서 봐야 했는데 근처에 상영할 곳이 없어 결국 이제서야 보게 됐다.(국내 개봉 1주년을 맞아 얼마 전 재개봉을 했는데 역시 이번에도 근처에 상영할 곳이 없었다. 덕분에 이 영화가 생각나서 볼 수 있었던 게 다행인데요.평소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해서 그의 장편과 단편소설 그리고 에세이까지 많이 읽은 편이지만 <드라이브 마이카>가 수록된 단편집 <여자 없는 남자들>은 읽어본 적이 없다. 원작을 영화화했다고 해서 단편소설을 먼저 읽고 영화를 볼까 했는데 영화 러닝타임이 3시간 가까이 되는 걸 보고 영화는 대략 원작의 뼈대 정도만 가져와 감독이 재구성했을 것 같아 이번에는 영화를 먼저 보고 원작을 읽기로 했다.(지금 내 책상 위에 여자 없는 남자들이 있다) 영화의 주인공인 가복은 연극배우이자 연출가이고 아내인 오토는 TV 드라마 작가다. 부러울 게 없어 보이는 부부.그러나 어느 날 허베이는 아내의 외도를 목격하지만 이에 대해 모른 척 지나쳐 버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는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는다.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는 부부가 어느 날 아무런 이유 없이 아내의 가출 혹은 외도로 남자는 홀로 남겨지고 그 남자는 무언가를 찾기 위해 길로 나선다는 점에서 하베이는 ‘전형적인’ 하루키 세계의 남자다. 오토는 쓰러지기 전 뭔가 결심하고 저녁에 할 얘기가 있다고 출근하는 까옥에게 말하지만 까옥은 그녀가 털어놓을까봐 일부러 아무것도 하지 않고 돌아다녔다. 늦게 집에 돌아와 쓰러져 있는 오토를 발견하지만 그녀는 이미 사망한 뒤였다. 아내의 외도를 알고 있었지만 여전히 그녀를 사랑했던 가와키타는 큰 상실감에 빠져 히로시마 연극제에 참가하기 위해 떠난다. 여기서 자신의 차를 운전해 주는 운전자 마사키를 만난 가호쿠(河北. 말수가 적은 마사키는 묵묵히 하북의 차를 몰지만 마사키에게도 어머니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가호쿠는 아내의 죽음에 대해, 미사키는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각각 상처를 안고 있는 것이다.하지만 아무리 이해한다고 생각하는 상대도, 아무리 사랑하는 상대도 다른 사람의 마음을 그대로 보는 것은 무리입니다. 자신이 힘들어질 뿐이에요. 그래도 그것이 자신의 마음이라면 노력에 따라 확실히 엿볼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자신의 마음과 능숙하게 솔직하게 타협해 나가는 것이 아닐까요. 정말 다른 사람을 만나고 싶다면 나 자신을 깊이 지켜볼 수밖에 없어요.마사키는 어머니의 죽음과 얽힌 사연을 가와이에게 들려주면서 정말 다른 사람을 만나고 싶다면 먼저 자신을 깊이 지켜봐야 한다고 말하고, 가와이는 진실을 마주할까 두려워 자신의 내면을 무시했음을 깨닫는다. 카와키타(河北)는 미사코(美佐子)에게 말한다.살아남은 자는 죽은 자를 계속 기억한다. 어떤 형태로든 그것이 이어진다. 나와 당신은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어. 살아야지. 괜찮아 우린 분명 괜찮을거야.그리하여 가와키타와 미사키는 그동안 어깨에 무겁게 짊어지고 있던 상실의 아픔을 치유한다. 〈드라이브 마이카〉는 극중 안톤 체호프의 〈바냐 아저씨〉를 만드는 과정이 중요한 요소로 등장한다. 여기서 한 가지 독특한 설정이 나오는데 바로 연극의 등장인물을 여러 나라 배우들로 골라 배우들은 자기 나라 말로 대사를 한다. 심지어 청각장애인 배우가 대사를 수화로 말한다. 그래서 한 연극에서 일본어, 중국어, 한국어, 수화가 등장하는 것이다. 배우들은 나와는 다른 언어의 상대방 대사를 듣고 그것에 리액션을 해야 한다. 같은 나라 말을 써도 배우 간 궁합이 생길까 말까 한 연극으로 유명 관광지처럼 여러 나라 말이 섞이다니. 감독의 의도는 뭘까. 본인의 배역에 자신이 없었던 다카쓰키가 가와키타에게 고민을 털어놓자 가와키타는 자신을 바쳐 대본에 답하겠다. 대본이 너에게 묻고 있어. 그 말을 듣고 대답하면 당신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조언한다. 상대방이 어느 나라 말을 하느냐가 중요하지 않다. 대본이 무엇을 묻고 있는지 귀를 기울이라는 게 감독이 말하려는 게 아닌가. 이는 위에서 언급한 진실로 남을 만나고 싶으면 자기 자신을 깊이 똑바로 보라는 미사코의 말과도 이어진다. 다카쓰키는 평소 드라이브 중 아내가 녹음해 준 연극 대사에 맞춰 바냐 삼촌 역을 열심히 연습하던 가와베이에게 왜 바냐 삼촌 역을 연기하지 않느냐고 묻자 가와베이는 체홉은 무섭다. 그의 대사를 들으면 나 자신이 끌려나온다며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는 것을 두려워하지만 미사코와의 홋카이도 여행을 통해 아픔을 달래고 바냐 아저씨씩 역을 맡는다. 바야흐로 자신과 당당히 마주할 수 있게 된 것이다.극은 영화는 소냐의 감동적인 수화로 끝이 난다.바냐 아저씨 사는 거예요. 길고 긴 낮과 긴 밤을 살아갑니다. 운명이 우리에게 주는 시련을 참아요. 지금도, 늙은 후에도 쉬지 말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일하세요. 그리고 우리 때가 와서 조용히 죽고 무덤에 가면 얘기해요. 얼마나 힘들었는지, 얼마나 울었는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하나님이 불쌍히 여길 것입니다. 우리는 아저씨, 사랑하는 아저씨, 밝고 우아한 삶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기뻐하고 지금의 이 불행을 감격에 젖어 미소 짓고 돌아볼 것입니다. 그리고 쉴 거예요. 저는 믿어요, 아저씨, 저는 뜨겁고 간절하게 믿어요.

상실의 시대가 지나가는 법… <드라이브 마이카> 하마구치 류스케의 <드라이브 마이카>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동명의 단편을 원작으로 해 만든 영화라고 한다.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 때처럼 ‘드라이브 마이카’도 주변 사람들이 추천해줘서 영화관에서 봐야 했는데 근처에 상영할 곳이 없어 결국 이제서야 보게 됐다.(국내 개봉 1주년을 맞아 얼마 전 재개봉을 했는데 역시 이번에도 근처에 상영할 곳이 없었다. 덕분에 이 영화가 생각나서 볼 수 있었던 게 다행인데요.평소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해서 그의 장편과 단편소설 그리고 에세이까지 많이 읽은 편이지만 <드라이브 마이카>가 수록된 단편집 <여자 없는 남자들>은 읽어본 적이 없다. 원작을 영화화했다고 해서 단편소설을 먼저 읽고 영화를 볼까 했는데 영화 러닝타임이 3시간 가까이 되는 걸 보고 영화는 대략 원작의 뼈대 정도만 가져와 감독이 재구성했을 것 같아 이번에는 영화를 먼저 보고 원작을 읽기로 했다.(지금 내 책상 위에 여자 없는 남자들이 있다) 영화의 주인공인 가복은 연극배우이자 연출가이고 아내인 오토는 TV 드라마 작가다. 부러울 게 없어 보이는 부부.그러나 어느 날 허베이는 아내의 외도를 목격하지만 이에 대해 모른 척 지나쳐 버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는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는다.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는 부부가 어느 날 아무런 이유 없이 아내의 가출 혹은 외도로 남자는 홀로 남겨지고 그 남자는 무언가를 찾기 위해 길로 나선다는 점에서 하베이는 ‘전형적인’ 하루키 세계의 남자다. 오토는 쓰러지기 전 뭔가 결심하고 저녁에 할 얘기가 있다고 출근하는 까옥에게 말하지만 까옥은 그녀가 털어놓을까봐 일부러 아무것도 하지 않고 돌아다녔다. 늦게 집에 돌아와 쓰러져 있는 오토를 발견하지만 그녀는 이미 사망한 뒤였다. 아내의 외도를 알고 있었지만 여전히 그녀를 사랑했던 가와키타는 큰 상실감에 빠져 히로시마 연극제에 참가하기 위해 떠난다. 여기서 자신의 차를 운전해 주는 운전자 마사키를 만난 가호쿠(河北. 말수가 적은 마사키는 묵묵히 하북의 차를 몰지만 마사키에게도 어머니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가호쿠는 아내의 죽음에 대해, 미사키는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각각 상처를 안고 있는 것이다.하지만 아무리 이해한다고 생각하는 상대도, 아무리 사랑하는 상대도 다른 사람의 마음을 그대로 보는 것은 무리입니다. 자신이 힘들어질 뿐이에요. 그래도 그것이 자신의 마음이라면 노력에 따라 확실히 엿볼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자신의 마음과 능숙하게 솔직하게 타협해 나가는 것이 아닐까요. 정말 다른 사람을 만나고 싶다면 나 자신을 깊이 지켜볼 수밖에 없어요.마사키는 어머니의 죽음과 얽힌 사연을 가와이에게 들려주면서 정말 다른 사람을 만나고 싶다면 먼저 자신을 깊이 지켜봐야 한다고 말하고, 가와이는 진실을 마주할까 두려워 자신의 내면을 무시했음을 깨닫는다. 카와키타(河北)는 미사코(美佐子)에게 말한다.살아남은 자는 죽은 자를 계속 기억한다. 어떤 형태로든 그것이 이어진다. 나와 당신은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어. 살아야지. 괜찮아 우린 분명 괜찮을거야.그리하여 가와키타와 미사키는 그동안 어깨에 무겁게 짊어지고 있던 상실의 아픔을 치유한다. 〈드라이브 마이카〉는 극중 안톤 체호프의 〈바냐 아저씨〉를 만드는 과정이 중요한 요소로 등장한다. 여기서 한 가지 독특한 설정이 나오는데 바로 연극의 등장인물을 여러 나라 배우들로 골라 배우들은 자기 나라 말로 대사를 한다. 심지어 청각장애인 배우가 대사를 수화로 말한다. 그래서 한 연극에서 일본어, 중국어, 한국어, 수화가 등장하는 것이다. 배우들은 나와는 다른 언어의 상대방 대사를 듣고 그것에 리액션을 해야 한다. 같은 나라 말을 써도 배우 간 궁합이 생길까 말까 한 연극으로 유명 관광지처럼 여러 나라 말이 섞이다니. 감독의 의도는 뭘까. 본인의 배역에 자신이 없었던 다카쓰키가 가와키타에게 고민을 털어놓자 가와키타는 자신을 바쳐 대본에 답하겠다. 대본이 너에게 묻고 있어. 그 말을 듣고 대답하면 당신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조언한다. 상대방이 어느 나라 말을 하느냐가 중요하지 않다. 대본이 무엇을 묻고 있는지 귀를 기울이라는 게 감독이 말하려는 게 아닌가. 이는 위에서 언급한 진실로 남을 만나고 싶으면 자기 자신을 깊이 똑바로 보라는 미사코의 말과도 이어진다. 다카쓰키는 평소 드라이브 중 아내가 녹음해 준 연극 대사에 맞춰 바냐 삼촌 역을 열심히 연습하던 가와베이에게 왜 바냐 삼촌 역을 연기하지 않느냐고 묻자 가와베이는 체홉은 무섭다. 그의 대사를 들으면 나 자신이 끌려나온다며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는 것을 두려워하지만 미사코와의 홋카이도 여행을 통해 아픔을 달래고 바냐 아저씨씩 역을 맡는다. 바야흐로 자신과 당당히 마주할 수 있게 된 것이다.극은 영화는 소냐의 감동적인 수화로 끝이 난다.바냐 아저씨 사는 거예요. 길고 긴 낮과 긴 밤을 살아갑니다. 운명이 우리에게 주는 시련을 참아요. 지금도, 늙은 후에도 쉬지 말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일하세요. 그리고 우리 때가 와서 조용히 죽고 무덤에 가면 얘기해요. 얼마나 힘들었는지, 얼마나 울었는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하나님이 불쌍히 여길 것입니다. 우리는 아저씨, 사랑하는 아저씨, 밝고 우아한 삶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기뻐하고 지금의 이 불행을 감격에 젖어 미소 짓고 돌아볼 것입니다. 그리고 쉴 거예요. 저는 믿어요, 아저씨, 저는 뜨겁고 간절하게 믿어요.

상실의 시대가 지나가는 법… <드라이브 마이카> 하마구치 류스케의 <드라이브 마이카>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동명의 단편을 원작으로 해 만든 영화라고 한다.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 때처럼 ‘드라이브 마이카’도 주변 사람들이 추천해줘서 영화관에서 봐야 했는데 근처에 상영할 곳이 없어 결국 이제서야 보게 됐다.(국내 개봉 1주년을 맞아 얼마 전 재개봉을 했는데 역시 이번에도 근처에 상영할 곳이 없었다. 덕분에 이 영화가 생각나서 볼 수 있었던 게 다행인데요.평소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해서 그의 장편과 단편소설 그리고 에세이까지 많이 읽은 편이지만 <드라이브 마이카>가 수록된 단편집 <여자 없는 남자들>은 읽어본 적이 없다. 원작을 영화화했다고 해서 단편소설을 먼저 읽고 영화를 볼까 했는데 영화 러닝타임이 3시간 가까이 되는 걸 보고 영화는 대략 원작의 뼈대 정도만 가져와 감독이 재구성했을 것 같아 이번에는 영화를 먼저 보고 원작을 읽기로 했다.(지금 내 책상 위에 여자 없는 남자들이 있다) 영화의 주인공인 가복은 연극배우이자 연출가이고 아내인 오토는 TV 드라마 작가다. 부러울 게 없어 보이는 부부.그러나 어느 날 허베이는 아내의 외도를 목격하지만 이에 대해 모른 척 지나쳐 버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는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는다.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는 부부가 어느 날 아무런 이유 없이 아내의 가출 혹은 외도로 남자는 홀로 남겨지고 그 남자는 무언가를 찾기 위해 길로 나선다는 점에서 하베이는 ‘전형적인’ 하루키 세계의 남자다. 오토는 쓰러지기 전 뭔가 결심하고 저녁에 할 얘기가 있다고 출근하는 까옥에게 말하지만 까옥은 그녀가 털어놓을까봐 일부러 아무것도 하지 않고 돌아다녔다. 늦게 집에 돌아와 쓰러져 있는 오토를 발견하지만 그녀는 이미 사망한 뒤였다. 아내의 외도를 알고 있었지만 여전히 그녀를 사랑했던 가와키타는 큰 상실감에 빠져 히로시마 연극제에 참가하기 위해 떠난다. 여기서 자신의 차를 운전해 주는 운전자 마사키를 만난 가호쿠(河北. 말수가 적은 마사키는 묵묵히 하북의 차를 몰지만 마사키에게도 어머니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가호쿠는 아내의 죽음에 대해, 미사키는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각각 상처를 안고 있는 것이다.하지만 아무리 이해한다고 생각하는 상대도, 아무리 사랑하는 상대도 다른 사람의 마음을 그대로 보는 것은 무리입니다. 자신이 힘들어질 뿐이에요. 그래도 그것이 자신의 마음이라면 노력에 따라 확실히 엿볼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자신의 마음과 능숙하게 솔직하게 타협해 나가는 것이 아닐까요. 정말 다른 사람을 만나고 싶다면 나 자신을 깊이 지켜볼 수밖에 없어요.마사키는 어머니의 죽음과 얽힌 사연을 가와이에게 들려주면서 정말 다른 사람을 만나고 싶다면 먼저 자신을 깊이 지켜봐야 한다고 말하고, 가와이는 진실을 마주할까 두려워 자신의 내면을 무시했음을 깨닫는다. 카와키타(河北)는 미사코(美佐子)에게 말한다.살아남은 자는 죽은 자를 계속 기억한다. 어떤 형태로든 그것이 이어진다. 나와 당신은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어. 살아야지. 괜찮아 우린 분명 괜찮을거야.그리하여 가와키타와 미사키는 그동안 어깨에 무겁게 짊어지고 있던 상실의 아픔을 치유한다. 〈드라이브 마이카〉는 극중 안톤 체호프의 〈바냐 아저씨〉를 만드는 과정이 중요한 요소로 등장한다. 여기서 한 가지 독특한 설정이 나오는데 바로 연극의 등장인물을 여러 나라 배우들로 골라 배우들은 자기 나라 말로 대사를 한다. 심지어 청각장애인 배우가 대사를 수화로 말한다. 그래서 한 연극에서 일본어, 중국어, 한국어, 수화가 등장하는 것이다. 배우들은 나와는 다른 언어의 상대방 대사를 듣고 그것에 리액션을 해야 한다. 같은 나라 말을 써도 배우 간 궁합이 생길까 말까 한 연극으로 유명 관광지처럼 여러 나라 말이 섞이다니. 감독의 의도는 뭘까. 본인의 배역에 자신이 없었던 다카쓰키가 가와키타에게 고민을 털어놓자 가와키타는 자신을 바쳐 대본에 답하겠다. 대본이 너에게 묻고 있어. 그 말을 듣고 대답하면 당신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조언한다. 상대방이 어느 나라 말을 하느냐가 중요하지 않다. 대본이 무엇을 묻고 있는지 귀를 기울이라는 게 감독이 말하려는 게 아닌가. 이는 위에서 언급한 진실로 남을 만나고 싶으면 자기 자신을 깊이 똑바로 보라는 미사코의 말과도 이어진다. 다카쓰키는 평소 드라이브 중 아내가 녹음해 준 연극 대사에 맞춰 바냐 삼촌 역을 열심히 연습하던 가와베이에게 왜 바냐 삼촌 역을 연기하지 않느냐고 묻자 가와베이는 체홉은 무섭다. 그의 대사를 들으면 나 자신이 끌려나온다며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는 것을 두려워하지만 미사코와의 홋카이도 여행을 통해 아픔을 달래고 바냐 아저씨씩 역을 맡는다. 바야흐로 자신과 당당히 마주할 수 있게 된 것이다.극은 영화는 소냐의 감동적인 수화로 끝이 난다.바냐 아저씨 사는 거예요. 길고 긴 낮과 긴 밤을 살아갑니다. 운명이 우리에게 주는 시련을 참아요. 지금도, 늙은 후에도 쉬지 말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일하세요. 그리고 우리 때가 와서 조용히 죽고 무덤에 가면 얘기해요. 얼마나 힘들었는지, 얼마나 울었는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하나님이 불쌍히 여길 것입니다. 우리는 아저씨, 사랑하는 아저씨, 밝고 우아한 삶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기뻐하고 지금의 이 불행을 감격에 젖어 미소 짓고 돌아볼 것입니다. 그리고 쉴 거예요. 저는 믿어요, 아저씨, 저는 뜨겁고 간절하게 믿어요.

상실의 시대가 지나가는 법… <드라이브 마이카> 하마구치 류스케의 <드라이브 마이카>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동명의 단편을 원작으로 해 만든 영화라고 한다.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 때처럼 ‘드라이브 마이카’도 주변 사람들이 추천해줘서 영화관에서 봐야 했는데 근처에 상영할 곳이 없어 결국 이제서야 보게 됐다.(국내 개봉 1주년을 맞아 얼마 전 재개봉을 했는데 역시 이번에도 근처에 상영할 곳이 없었다. 덕분에 이 영화가 생각나서 볼 수 있었던 게 다행인데요.평소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해서 그의 장편과 단편소설 그리고 에세이까지 많이 읽은 편이지만 <드라이브 마이카>가 수록된 단편집 <여자 없는 남자들>은 읽어본 적이 없다. 원작을 영화화했다고 해서 단편소설을 먼저 읽고 영화를 볼까 했는데 영화 러닝타임이 3시간 가까이 되는 걸 보고 영화는 대략 원작의 뼈대 정도만 가져와 감독이 재구성했을 것 같아 이번에는 영화를 먼저 보고 원작을 읽기로 했다.(지금 내 책상 위에 여자 없는 남자들이 있다) 영화의 주인공인 가복은 연극배우이자 연출가이고 아내인 오토는 TV 드라마 작가다. 부러울 게 없어 보이는 부부.그러나 어느 날 허베이는 아내의 외도를 목격하지만 이에 대해 모른 척 지나쳐 버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는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는다.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는 부부가 어느 날 아무런 이유 없이 아내의 가출 혹은 외도로 남자는 홀로 남겨지고 그 남자는 무언가를 찾기 위해 길로 나선다는 점에서 하베이는 ‘전형적인’ 하루키 세계의 남자다. 오토는 쓰러지기 전 뭔가 결심하고 저녁에 할 얘기가 있다고 출근하는 까옥에게 말하지만 까옥은 그녀가 털어놓을까봐 일부러 아무것도 하지 않고 돌아다녔다. 늦게 집에 돌아와 쓰러져 있는 오토를 발견하지만 그녀는 이미 사망한 뒤였다. 아내의 외도를 알고 있었지만 여전히 그녀를 사랑했던 가와키타는 큰 상실감에 빠져 히로시마 연극제에 참가하기 위해 떠난다. 여기서 자신의 차를 운전해 주는 운전자 마사키를 만난 가호쿠(河北. 말수가 적은 마사키는 묵묵히 하북의 차를 몰지만 마사키에게도 어머니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가호쿠는 아내의 죽음에 대해, 미사키는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각각 상처를 안고 있는 것이다.하지만 아무리 이해한다고 생각하는 상대도, 아무리 사랑하는 상대도 다른 사람의 마음을 그대로 보는 것은 무리입니다. 자신이 힘들어질 뿐이에요. 그래도 그것이 자신의 마음이라면 노력에 따라 확실히 엿볼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자신의 마음과 능숙하게 솔직하게 타협해 나가는 것이 아닐까요. 정말 다른 사람을 만나고 싶다면 나 자신을 깊이 지켜볼 수밖에 없어요.마사키는 어머니의 죽음과 얽힌 사연을 가와이에게 들려주면서 정말 다른 사람을 만나고 싶다면 먼저 자신을 깊이 지켜봐야 한다고 말하고, 가와이는 진실을 마주할까 두려워 자신의 내면을 무시했음을 깨닫는다. 카와키타(河北)는 미사코(美佐子)에게 말한다.살아남은 자는 죽은 자를 계속 기억한다. 어떤 형태로든 그것이 이어진다. 나와 당신은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어. 살아야지. 괜찮아 우린 분명 괜찮을거야.그리하여 가와키타와 미사키는 그동안 어깨에 무겁게 짊어지고 있던 상실의 아픔을 치유한다. 〈드라이브 마이카〉는 극중 안톤 체호프의 〈바냐 아저씨〉를 만드는 과정이 중요한 요소로 등장한다. 여기서 한 가지 독특한 설정이 나오는데 바로 연극의 등장인물을 여러 나라 배우들로 골라 배우들은 자기 나라 말로 대사를 한다. 심지어 청각장애인 배우가 대사를 수화로 말한다. 그래서 한 연극에서 일본어, 중국어, 한국어, 수화가 등장하는 것이다. 배우들은 나와는 다른 언어의 상대방 대사를 듣고 그것에 리액션을 해야 한다. 같은 나라 말을 써도 배우 간 궁합이 생길까 말까 한 연극으로 유명 관광지처럼 여러 나라 말이 섞이다니. 감독의 의도는 뭘까. 본인의 배역에 자신이 없었던 다카쓰키가 가와키타에게 고민을 털어놓자 가와키타는 자신을 바쳐 대본에 답하겠다. 대본이 너에게 묻고 있어. 그 말을 듣고 대답하면 당신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조언한다. 상대방이 어느 나라 말을 하느냐가 중요하지 않다. 대본이 무엇을 묻고 있는지 귀를 기울이라는 게 감독이 말하려는 게 아닌가. 이는 위에서 언급한 진실로 남을 만나고 싶으면 자기 자신을 깊이 똑바로 보라는 미사코의 말과도 이어진다. 다카쓰키는 평소 드라이브 중 아내가 녹음해 준 연극 대사에 맞춰 바냐 삼촌 역을 열심히 연습하던 가와베이에게 왜 바냐 삼촌 역을 연기하지 않느냐고 묻자 가와베이는 체홉은 무섭다. 그의 대사를 들으면 나 자신이 끌려나온다며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는 것을 두려워하지만 미사코와의 홋카이도 여행을 통해 아픔을 달래고 바냐 아저씨씩 역을 맡는다. 바야흐로 자신과 당당히 마주할 수 있게 된 것이다.극은 영화는 소냐의 감동적인 수화로 끝이 난다.바냐 아저씨 사는 거예요. 길고 긴 낮과 긴 밤을 살아갑니다. 운명이 우리에게 주는 시련을 참아요. 지금도, 늙은 후에도 쉬지 말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일하세요. 그리고 우리 때가 와서 조용히 죽고 무덤에 가면 얘기해요. 얼마나 힘들었는지, 얼마나 울었는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하나님이 불쌍히 여길 것입니다. 우리는 아저씨, 사랑하는 아저씨, 밝고 우아한 삶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기뻐하고 지금의 이 불행을 감격에 젖어 미소 짓고 돌아볼 것입니다. 그리고 쉴 거예요. 저는 믿어요, 아저씨, 저는 뜨겁고 간절하게 믿어요.

상실의 시대가 지나가는 법… <드라이브 마이카> 하마구치 류스케의 <드라이브 마이카>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동명의 단편을 원작으로 해 만든 영화라고 한다.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 때처럼 ‘드라이브 마이카’도 주변 사람들이 추천해줘서 영화관에서 봐야 했는데 근처에 상영할 곳이 없어 결국 이제서야 보게 됐다.(국내 개봉 1주년을 맞아 얼마 전 재개봉을 했는데 역시 이번에도 근처에 상영할 곳이 없었다. 덕분에 이 영화가 생각나서 볼 수 있었던 게 다행인데요.평소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해서 그의 장편과 단편소설 그리고 에세이까지 많이 읽은 편이지만 <드라이브 마이카>가 수록된 단편집 <여자 없는 남자들>은 읽어본 적이 없다. 원작을 영화화했다고 해서 단편소설을 먼저 읽고 영화를 볼까 했는데 영화 러닝타임이 3시간 가까이 되는 걸 보고 영화는 대략 원작의 뼈대 정도만 가져와 감독이 재구성했을 것 같아 이번에는 영화를 먼저 보고 원작을 읽기로 했다.(지금 내 책상 위에 여자 없는 남자들이 있다) 영화의 주인공인 가복은 연극배우이자 연출가이고 아내인 오토는 TV 드라마 작가다. 부러울 게 없어 보이는 부부.그러나 어느 날 허베이는 아내의 외도를 목격하지만 이에 대해 모른 척 지나쳐 버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는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는다.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는 부부가 어느 날 아무런 이유 없이 아내의 가출 혹은 외도로 남자는 홀로 남겨지고 그 남자는 무언가를 찾기 위해 길로 나선다는 점에서 하베이는 ‘전형적인’ 하루키 세계의 남자다. 오토는 쓰러지기 전 뭔가 결심하고 저녁에 할 얘기가 있다고 출근하는 까옥에게 말하지만 까옥은 그녀가 털어놓을까봐 일부러 아무것도 하지 않고 돌아다녔다. 늦게 집에 돌아와 쓰러져 있는 오토를 발견하지만 그녀는 이미 사망한 뒤였다. 아내의 외도를 알고 있었지만 여전히 그녀를 사랑했던 가와키타는 큰 상실감에 빠져 히로시마 연극제에 참가하기 위해 떠난다. 여기서 자신의 차를 운전해 주는 운전자 마사키를 만난 가호쿠(河北. 말수가 적은 마사키는 묵묵히 하북의 차를 몰지만 마사키에게도 어머니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가호쿠는 아내의 죽음에 대해, 미사키는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각각 상처를 안고 있는 것이다.하지만 아무리 이해한다고 생각하는 상대도, 아무리 사랑하는 상대도 다른 사람의 마음을 그대로 보는 것은 무리입니다. 자신이 힘들어질 뿐이에요. 그래도 그것이 자신의 마음이라면 노력에 따라 확실히 엿볼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자신의 마음과 능숙하게 솔직하게 타협해 나가는 것이 아닐까요. 정말 다른 사람을 만나고 싶다면 나 자신을 깊이 지켜볼 수밖에 없어요.마사키는 어머니의 죽음과 얽힌 사연을 가와이에게 들려주면서 정말 다른 사람을 만나고 싶다면 먼저 자신을 깊이 지켜봐야 한다고 말하고, 가와이는 진실을 마주할까 두려워 자신의 내면을 무시했음을 깨닫는다. 카와키타(河北)는 미사코(美佐子)에게 말한다.살아남은 자는 죽은 자를 계속 기억한다. 어떤 형태로든 그것이 이어진다. 나와 당신은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어. 살아야지. 괜찮아 우린 분명 괜찮을거야.그리하여 가와키타와 미사키는 그동안 어깨에 무겁게 짊어지고 있던 상실의 아픔을 치유한다. 〈드라이브 마이카〉는 극중 안톤 체호프의 〈바냐 아저씨〉를 만드는 과정이 중요한 요소로 등장한다. 여기서 한 가지 독특한 설정이 나오는데 바로 연극의 등장인물을 여러 나라 배우들로 골라 배우들은 자기 나라 말로 대사를 한다. 심지어 청각장애인 배우가 대사를 수화로 말한다. 그래서 한 연극에서 일본어, 중국어, 한국어, 수화가 등장하는 것이다. 배우들은 나와는 다른 언어의 상대방 대사를 듣고 그것에 리액션을 해야 한다. 같은 나라 말을 써도 배우 간 궁합이 생길까 말까 한 연극으로 유명 관광지처럼 여러 나라 말이 섞이다니. 감독의 의도는 뭘까. 본인의 배역에 자신이 없었던 다카쓰키가 가와키타에게 고민을 털어놓자 가와키타는 자신을 바쳐 대본에 답하겠다. 대본이 너에게 묻고 있어. 그 말을 듣고 대답하면 당신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조언한다. 상대방이 어느 나라 말을 하느냐가 중요하지 않다. 대본이 무엇을 묻고 있는지 귀를 기울이라는 게 감독이 말하려는 게 아닌가. 이는 위에서 언급한 진실로 남을 만나고 싶으면 자기 자신을 깊이 똑바로 보라는 미사코의 말과도 이어진다. 다카쓰키는 평소 드라이브 중 아내가 녹음해 준 연극 대사에 맞춰 바냐 삼촌 역을 열심히 연습하던 가와베이에게 왜 바냐 삼촌 역을 연기하지 않느냐고 묻자 가와베이는 체홉은 무섭다. 그의 대사를 들으면 나 자신이 끌려나온다며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는 것을 두려워하지만 미사코와의 홋카이도 여행을 통해 아픔을 달래고 바냐 아저씨씩 역을 맡는다. 바야흐로 자신과 당당히 마주할 수 있게 된 것이다.극은 영화는 소냐의 감동적인 수화로 끝이 난다.바냐 아저씨 사는 거예요. 길고 긴 낮과 긴 밤을 살아갑니다. 운명이 우리에게 주는 시련을 참아요. 지금도, 늙은 후에도 쉬지 말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일하세요. 그리고 우리 때가 와서 조용히 죽고 무덤에 가면 얘기해요. 얼마나 힘들었는지, 얼마나 울었는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하나님이 불쌍히 여길 것입니다. 우리는 아저씨, 사랑하는 아저씨, 밝고 우아한 삶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기뻐하고 지금의 이 불행을 감격에 젖어 미소 짓고 돌아볼 것입니다. 그리고 쉴 거예요. 저는 믿어요, 아저씨, 저는 뜨겁고 간절하게 믿어요.상실의 시대가 지나가는 법… <드라이브 마이카> 하마구치 류스케의 <드라이브 마이카>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동명의 단편을 원작으로 해 만든 영화라고 한다.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 때처럼 ‘드라이브 마이카’도 주변 사람들이 추천해줘서 영화관에서 봐야 했는데 근처에 상영할 곳이 없어 결국 이제서야 보게 됐다.(국내 개봉 1주년을 맞아 얼마 전 재개봉을 했는데 역시 이번에도 근처에 상영할 곳이 없었다. 덕분에 이 영화가 생각나서 볼 수 있었던 게 다행인데요.평소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해서 그의 장편과 단편소설 그리고 에세이까지 많이 읽은 편이지만 <드라이브 마이카>가 수록된 단편집 <여자 없는 남자들>은 읽어본 적이 없다. 원작을 영화화했다고 해서 단편소설을 먼저 읽고 영화를 볼까 했는데 영화 러닝타임이 3시간 가까이 되는 걸 보고 영화는 대략 원작의 뼈대 정도만 가져와 감독이 재구성했을 것 같아 이번에는 영화를 먼저 보고 원작을 읽기로 했다.(지금 내 책상 위에 여자 없는 남자들이 있다) 영화의 주인공인 가복은 연극배우이자 연출가이고 아내인 오토는 TV 드라마 작가다. 부러울 게 없어 보이는 부부.그러나 어느 날 허베이는 아내의 외도를 목격하지만 이에 대해 모른 척 지나쳐 버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는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는다.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는 부부가 어느 날 아무런 이유 없이 아내의 가출 혹은 외도로 남자는 홀로 남겨지고 그 남자는 무언가를 찾기 위해 길로 나선다는 점에서 하베이는 ‘전형적인’ 하루키 세계의 남자다. 오토는 쓰러지기 전 뭔가 결심하고 저녁에 할 얘기가 있다고 출근하는 까옥에게 말하지만 까옥은 그녀가 털어놓을까봐 일부러 아무것도 하지 않고 돌아다녔다. 늦게 집에 돌아와 쓰러져 있는 오토를 발견하지만 그녀는 이미 사망한 뒤였다. 아내의 외도를 알고 있었지만 여전히 그녀를 사랑했던 가와키타는 큰 상실감에 빠져 히로시마 연극제에 참가하기 위해 떠난다. 여기서 자신의 차를 운전해 주는 운전자 마사키를 만난 가호쿠(河北. 말수가 적은 마사키는 묵묵히 하북의 차를 몰지만 마사키에게도 어머니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가호쿠는 아내의 죽음에 대해, 미사키는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각각 상처를 안고 있는 것이다.하지만 아무리 이해한다고 생각하는 상대도, 아무리 사랑하는 상대도 다른 사람의 마음을 그대로 보는 것은 무리입니다. 자신이 힘들어질 뿐이에요. 그래도 그것이 자신의 마음이라면 노력에 따라 확실히 엿볼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자신의 마음과 능숙하게 솔직하게 타협해 나가는 것이 아닐까요. 정말 다른 사람을 만나고 싶다면 나 자신을 깊이 지켜볼 수밖에 없어요.마사키는 어머니의 죽음과 얽힌 사연을 가와이에게 들려주면서 정말 다른 사람을 만나고 싶다면 먼저 자신을 깊이 지켜봐야 한다고 말하고, 가와이는 진실을 마주할까 두려워 자신의 내면을 무시했음을 깨닫는다. 카와키타(河北)는 미사코(美佐子)에게 말한다.살아남은 자는 죽은 자를 계속 기억한다. 어떤 형태로든 그것이 이어진다. 나와 당신은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어. 살아야지. 괜찮아 우린 분명 괜찮을거야.그리하여 가와키타와 미사키는 그동안 어깨에 무겁게 짊어지고 있던 상실의 아픔을 치유한다. 〈드라이브 마이카〉는 극중 안톤 체호프의 〈바냐 아저씨〉를 만드는 과정이 중요한 요소로 등장한다. 여기서 한 가지 독특한 설정이 나오는데 바로 연극의 등장인물을 여러 나라 배우들로 골라 배우들은 자기 나라 말로 대사를 한다. 심지어 청각장애인 배우가 대사를 수화로 말한다. 그래서 한 연극에서 일본어, 중국어, 한국어, 수화가 등장하는 것이다. 배우들은 나와는 다른 언어의 상대방 대사를 듣고 그것에 리액션을 해야 한다. 같은 나라 말을 써도 배우 간 궁합이 생길까 말까 한 연극으로 유명 관광지처럼 여러 나라 말이 섞이다니. 감독의 의도는 뭘까. 본인의 배역에 자신이 없었던 다카쓰키가 가와키타에게 고민을 털어놓자 가와키타는 자신을 바쳐 대본에 답하겠다. 대본이 너에게 묻고 있어. 그 말을 듣고 대답하면 당신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조언한다. 상대방이 어느 나라 말을 하느냐가 중요하지 않다. 대본이 무엇을 묻고 있는지 귀를 기울이라는 게 감독이 말하려는 게 아닌가. 이는 위에서 언급한 진실로 남을 만나고 싶으면 자기 자신을 깊이 똑바로 보라는 미사코의 말과도 이어진다. 다카쓰키는 평소 드라이브 중 아내가 녹음해 준 연극 대사에 맞춰 바냐 삼촌 역을 열심히 연습하던 가와베이에게 왜 바냐 삼촌 역을 연기하지 않느냐고 묻자 가와베이는 체홉은 무섭다. 그의 대사를 들으면 나 자신이 끌려나온다며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는 것을 두려워하지만 미사코와의 홋카이도 여행을 통해 아픔을 달래고 바냐 아저씨씩 역을 맡는다. 바야흐로 자신과 당당히 마주할 수 있게 된 것이다.극은 영화는 소냐의 감동적인 수화로 끝이 난다.바냐 아저씨 사는 거예요. 길고 긴 낮과 긴 밤을 살아갑니다. 운명이 우리에게 주는 시련을 참아요. 지금도, 늙은 후에도 쉬지 말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일하세요. 그리고 우리 때가 와서 조용히 죽고 무덤에 가면 얘기해요. 얼마나 힘들었는지, 얼마나 울었는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하나님이 불쌍히 여길 것입니다. 우리는 아저씨, 사랑하는 아저씨, 밝고 우아한 삶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기뻐하고 지금의 이 불행을 감격에 젖어 미소 짓고 돌아볼 것입니다. 그리고 쉴 거예요. 저는 믿어요, 아저씨, 저는 뜨겁고 간절하게 믿어요.[로]영화에서 감독은 연극 축제가 열리는 장소를 히로시마로 정하고 히로시마 원폭 돔의 모습을 보이면서 미사키의 대사를 통해서 히로시마 평화 공원 평화의 축선에 대해서 말했다. 극중에서 다소 엉뚱한 장면처럼 생각되었지만 뭔가 자신들을 원폭 피해자하고만 위치하는 듯했다. 그들이 말하는 평화의 대상은 누구? 원폭 피해자를 추모한다면 그들이 주변국에 안긴 참상의 피해자에 대한 추모는? 원폭 피해자는 물론 추모해야 하지만 왜 자신의 땅에 원폭이 투하됐는지, 전쟁으로 주변국에 얼마나 큰 비극을 초래한 것인가에 대한 반성이 선행되야 하는데 그런 부분 없이 그냥 피해자하고만 한 듯 불편하다. 영화 초반까지는 복이 연극제에 참가하기 위해서 서브를 운전해서 나리타 공항에 주차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설마 여기서 “북쪽 윙”이 나오지 않나 하고 내심 생각했으나, 먼 배경 역시 선명한 “북쪽 윙”글씨가 보여서 혼자 기뻐하게 말했다. “북쪽 윙”는 제가 좋아하는 나카모리 아키나의 히트 곡에서 나리타 공항의 북쪽 터미널 청사를 가리키는 말이다. 전에 아키나의 글을 포스팅한 때 아키나가 나리타 북쪽 윙 포워드부터 출국하는 모습을 방송한 영상을 게재했는데, 영화에서 이같이 나리타 공항-윙을 볼 수 있어 기뻤다.평소 외국어에 관심 있으신 분이라 낯선 언어를 배우고 싶다는 호기심이 있어서 너무 기초적이지만, 중국어 일본어를 조금씩 배우고 있지만 극중 연극에서 이 언어가 나오면 외계어(!)처럼 낯선 느낌은 하지 않고 좀 더 가까워진 말로 들려서 다행이다. 영화에는 클래식 음악이 나오는데 모차르트의 “Rondo K.485 in D Major”과 베토벤의 “String Quartet No.3 in D Major”이다. 극중 주인공처럼 비중 있는 서브 900터보가 너무 멋지게 나온다. 연식을 살펴보면, 상당히 오래 된 클래식 카 같은데 요즘 나와도 잘 팔릴 만한 디자인이다. 처음 베스파를 봤을 때, 반한 느낌이란? 주인공 카훅의 한자 이름은 “가복”이다. 극중의 상황에 비추어 보니, 뭔가 비꼬는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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